전통음식5 익산 순대국밥 (노포의 맛, 토렴 방식, 가업 계승) 익산 시장 한복판에 50년째 자리를 지키는 순대국밥집이 있습니다. 1947년에 문을 연 익산 시장에서 반세기 가까이 새벽마다 돼지 부속물을 손질하고, 지금도 손으로 순대를 빚는 곳입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평소 순대국밥을 그냥 '시장 음식' 정도로 여겼는데, 한 그릇에 한 가족의 50년이 담길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습니다. 노포의 맛 —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육수의 시간제가 직접 겪어보니 맛있는 국물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재료를 다루는 시간입니다. 이 집 이시동 씨는 50년 동안 매일 새벽부터 머릿고기, 허파, 간, 감투 같은 돼지 부속물을 손질하고 삶아왔다고 합니다. 감투란 돼지의 첫 번째 위를 가리키는 말로, 식감이 독특해 부속물 요리를 좋아.. 2026. 8. 20. 대전 묵마을 (전통 제조법, 묵사발, 묵말랭이) 도토리묵은 과거 허기를 달래던 구황식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묵을 40년째 산에서 직접 상수리를 따다가 녹말을 만들어 쑤는 집이 대전에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전통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겁고 따뜻한 단어인지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40년 전통 제조법, 그냥 오래된 게 아닙니다이 가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계산대를 놓은 자리는 외양간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세련된 음식점과 비교하면 너무나 소박한 시작이지만, 그 공간에서 어머니 순자 씨가 묵을 쑤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전통 제조법의 핵심은 상수리를 직접 채취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상수리란 참나무 계열에서 열리는 도토리의 일종으로, 여기서 녹말을 뽑아 묵의 원료로 사용합니다. 여기서 녹말이란 도토리를 빻고 물에 가라앉.. 2026. 8. 16. 할머니 양념치킨 (손맛, 추억, 위생) 치킨을 먹다가 문득 "예전에 먹던 그 맛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브랜드는 다 다른데 어쩐지 다 비슷한 맛이랄까요. 그러다 82세 할머니가 35년째 혼자 지켜온 치킨집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화려한 간판도, 세련된 인테리어도 없는 곳인데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그게 왜인지 꽤 오래 생각했습니다. 35년 손맛이 만든 치킨, 그 안에 담긴 시간할머니의 치킨 손질 방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양파즙이었습니다. 닭을 손질한 뒤 양파즙을 듬뿍 넣어 잡내를 잡는다고 하는데, 이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과학적인 방식입니다.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마이야르 반응이란 단백질과 당분이 열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화학 반응으.. 2026. 8. 14. 담양 떡갈비 (4대 전통, 숯불 훈연, 100년 양념) 음식점에서 떡갈비를 시킬 때 별생각 없이 먹었던 적이 저도 꽤 많습니다. 그냥 고기를 다져서 뭉친 음식이겠거니 했으니까요. 그런데 전라남도 담양에서 89년째 4대에 걸쳐 이어온 떡갈비집을 알게 되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갈비살을 뼈에서 일일이 발라낸 뒤 다시 뼈에 붙여 굽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4대 가업이 말해주는 것 — 전통의 무게한 음식을 90년 가까이 이어간다는 게 쉬운 일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제 경험상 그런 집은 정말 드뭅니다. 담양 이 떡갈비집은 1대 할머니가 마을 잔치에서 갈비를 담당하던 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귀한 고기를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뭉쳐 만든 것이 떡갈비의 출발이었고, 양반들이 체면상 고기를 직접 뜯기 어려워 다져 먹던.. 2026. 8. 11. 귀순 할머니 빈대떡 (반죽, 장인정신, 가족경영)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막걸리 한 잔과 빈대떡이 생각나는 건 그냥 입맛의 문제라고만 여겼는데, 81세 귀순 할머니가 4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빈대떡 가게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음식에는 단순한 맛이 아니라, 그걸 만들어온 사람의 삶 전체가 녹아 있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습니다. 반죽이 전부다 — 수십 년이 만든 감각제가 직접 녹두빈대떡을 만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레시피대로 따라 했는데도 반죽이 너무 묽어서 팬에 퍼져버리거나, 반대로 뻑뻑해서 속이 잘 익지 않는 문제가 반복됐습니다. 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반죽의 수분 함량을 감각으로 조절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할머니는 물 조절과 반죽 상태를 척하면 척 알아챈다고 합니다. 이건 단순한 숙련도의 문제.. 2026. 8. 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