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순대라는 음식을 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면이 가득 들어가고, 소금이나 새우젓에 찍어 먹는 그 음식 말입니다. 그런데 부산 깡통시장의 한 순대 가게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제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것이 순대의 극히 일부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68년 전통의 이북식 순대, 당면 한 가닥 없이 삶은 감자와 찹쌀밥으로 속을 채운다는 이야기는 제 머릿속 순대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이북식 순대가 일반 순대와 다른 이유
제가 처음 이 가게의 제조 방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게 순대 맞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순대 하면 당면(유리면)을 속 재료의 중심으로 쓰는데, 여기서는 당면을 아예 쓰지 않습니다. 당면이란 고구마나 녹두 전분을 가공해 만든 면으로, 저렴하고 양을 늘리기 좋아 대부분의 순대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재료입니다. 그런데 이 집은 당면 대신 삶은 감자를 씁니다.
삶은 감자를 쓰는 이유가 단순히 다르게 보이려는 게 아니라는 게 핵심입니다. 전분(starch) 대신 삶은 감자를 넣으면 속 재료가 뭉치면서도 찰기가 살아납니다. 전분이란 탄수화물의 일종으로, 가열했을 때 호화(糊化)가 일어나 점성을 만들어 주는 성질이 있습니다. 삶은 감자도 동일한 원리로 작동하되, 화학적으로 가공되지 않은 천연 상태 그대로이기 때문에 식감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제 경험상 이처럼 원재료로 식감을 잡아주는 방식은 완성된 요리의 맛에 분명히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속 재료를 살펴보면 삶은 감자 양념, 고추, 파, 양배추, 찹쌀밥, 숙성 돼지고기까지 6가지로 구성됩니다. 여기에 항아리에서 숙성시킨 재래식 된장과 숙성 간장이 더해집니다. 숙성 간장이란 단순히 간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돼지고기 건면에 여러 차례 덧발라 가며 익히는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 즉 단백질과 당이 열에 의해 반응하여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 내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고기에 깊은 색과 향이 배게 됩니다.
- 당면 없이 삶은 감자로 찰기를 잡는 천연 방식
- 항아리 숙성 재래식 된장과 숙성 간장 사용
- 돼지고기 건면에 간장을 여러 번 익혀 풍미 극대화
- 찹쌀밥·고추·파·양배추 등 6가지 천연 재료로만 속을 채움
막창 순대, 왜 이 집의 간판 메뉴인가
이 가게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메뉴는 막창 순대였습니다. 막창이란 돼지 대장의 가장 끝 부분으로, 지방 함량이 높고 특유의 고소한 향이 있는 부위입니다. 일반 순대가 소창(소장)에 속을 채우는 것과 달리, 막창에 이북식 순대 속을 넣으면 케이싱(casing, 순대 껍질 역할을 하는 장 부위) 자체의 두께와 탄력이 달라집니다. 씹을 때 느껴지는 쫄깃한 저항감이 훨씬 강하고, 막창 특유의 고소함이 속 재료의 감칠맛과 합쳐지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막창 순대를 먹어 본 건 아닙니다만, 제조 과정만 봐도 이 집이 재료 선택에서 타협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막창은 당일 도축한 국내산만 씁니다. 이른바 콜드체인(cold chain), 즉 도축 이후 저온 유통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신선도 유지가 어렵습니다. 도내산 당일 도축 막창을 쓴다는 것은 유통 단계를 최소화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의 축산물 위생관리 기준에 따르면, 내장류는 특히 온도 관리와 당일 처리가 신선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삶는 방식도 일반 순대와 차이가 있습니다. 막창 순대는 사골 육수에 30분, 일반 순대는 10분간 삶습니다. 사골 육수란 소의 다리뼈를 장시간 끓여 콜라겐과 무기질이 녹아든 국물을 말합니다. 여기서 순대를 삶으면 껍질에 구수한 향이 배고, 속까지 열이 고르게 전달되어 식감이 안정됩니다. 일 매출 170만 원을 기록한다는 수치가 허투루 나온 숫자가 아닌 이유입니다.
순대전골과 68년 가업, 숫자로 보면 더 무겁다
이북식 순대전골은 사골 육수에 양념장을 풀고 신선한 채소, 순대, 당면, 버섯을 넣어 끓이는 메뉴입니다. 생강이 들어가 잡내를 잡고, 오래 끓일수록 재료들 사이에서 글루탐산(glutamic acid) 계열의 감칠맛 성분이 용출되어 국물이 깊어집니다. 글루탐산이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다시마·멸치·된장·돼지뼈 등에 자연적으로 들어 있으며 "감칠맛(umami)"을 만드는 핵심 성분입니다. 맵지 않으면서도 얼큰한 맛을 낸다는 점에서 이북 음식 특유의 결이 느껴집니다.
42년간 순대 한 가지만 만들어 온 사장님의 이야기는 제게 단순한 감동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기술을 1만 시간 이상 쌓으면 전문가 수준에 이른다는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 법칙(10,000-hour rule)을 대입해 보면, 42년은 단순 계산으로도 수십 배를 초과합니다. 출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음식업 자영업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3~5년 수준입니다. 그 기준에서 보면 68년 가업 지속은 통계적으로 극히 드문 사례입니다.
할머니 세대가 피난길에 시작한 순대 장사가 어머니를 거쳐 지금의 사장님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전통을 지킨다"는 말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전국 배송까지 시작했다는 점은 반가운 동시에 한 가지 숙제를 남깁니다. 신선 내장류를 사용한 순대는 배송 과정에서 온도와 시간 관리, 즉 콜드체인 유지가 맛과 직결됩니다. 전통의 맛을 전국으로 넓히는 것은 가능성이 있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품질 관리 기준이 함께 공개된다면 소비자의 신뢰는 훨씬 두터워질 것이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북식 순대는 일반 순대랑 뭐가 다른 건가요?
A. 가장 큰 차이는 속 재료에 당면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신 삶은 감자, 찹쌀밥, 숙성 돼지고기, 양배추 등 천연 재료로만 속을 채웁니다. 여기에 항아리 숙성 된장과 숙성 간장을 더해 깊은 풍미를 만드는 것이 이북식 전통 방식의 핵심입니다.
Q. 막창 순대는 어디서 먹을 수 있나요?
A. 막창 순대는 부산 깡통시장 내 68년 전통의 이북식 순대 전문점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이른 시간부터 손님이 몰릴 만큼 인기가 높으므로, 방문 전 운영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국 배송도 운영 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Q. 순대를 사골 육수에 삶으면 맛이 달라지나요?
A. 차이가 납니다. 사골 육수에는 콜라겐과 무기질이 녹아 있어, 순대 껍질이 이 국물을 흡수하면서 구수한 향과 깊은 맛이 더해집니다. 단순히 물에 삶을 때와 비교하면 순대 자체의 풍미가 한 단계 올라가는 효과가 있습니다.
Q. 이북식 순대전골은 많이 맵나요?
A. 맵지 않으면서 얼큰한 맛을 내는 것이 이 집 순대전골의 특징입니다. 이북 음식은 일반적으로 강한 매운맛보다 깊은 국물 맛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매운 음식이 부담스러운 분들도 무리 없이 드실 수 있는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론
이번에 부산 깡통시장 이북식 순대 이야기를 파고들면서 제가 배운 건 단순히 "맛집 하나 발견했다"가 아닙니다. 좋은 음식의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원리를 처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본 느낌이었습니다. 당면을 빼고 삶은 감자를 넣는 선택, 막창을 당일 도축분으로만 쓰는 기준, 사골 육수에 30분을 삶는 과정 — 이 하나하나가 결국 수십 년 동안 검증된 데이터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과 현대적인 품질 기준을 갖추는 것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68년을 버텨온 가게라면, 재료 관리와 배송 위생 기준을 함께 공개할 때 그 가치가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부산에 가게 된다면 깡통시장에서 직접 막창 순대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이 모든 이야기를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